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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에는 왜 따옴표가 있을까?

2016년 3월 29일
@ 우리는 왜 어두운 과거를 이야기할까?

지난 3월 19일, 송석복지재단에서 다섯 번째 생각하는 데이가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에는 왜 따옴표가 있을까?라는 물음에 우리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왔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임의 마지막에 가서야 풀 수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소규모로 이뤄지면서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는데요. 밖에서 지켜보던 복지관 선생님들도 궁금해하신, 다섯 번째 생각하는데이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이야기해보며 모임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상처를 주거나 혹은 상처를 입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눴습니다. 그 고통의 크기는 본인만이 알겠지요. 분위기는 진지했지만, 자신들의 이런 솔직한 이야기가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생각해 보며 금세 활기를 찾았습니다.

개인적 이야기에서 국가적 차원의 역사 이야기로 자연스레 넘어가며 우리는 다시 어두운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역사 이야기를 해보고 다시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과거는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쟁과 식민지 정책에 대해서는 더욱 합리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분명한 피해자가 있기에 더욱 강하게 자신들의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 내가 일본인이라면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이야기할까? 

그런데, 우리는 왜 내가 저지른 죄도 아닌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의 아버지가 범죄자라면 나도 범죄자가 되는 걸까요? 아니면 나의 아버지의 범죄를 나의 자식도 고백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 참가자들은 대부분 피해자를 생각하면 계속 고백하는 것이 맞으나 가해자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단순한 죄의 고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현대사 안에서 우리는 과연 전쟁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 우리가 지은 죄가 아닌데 이야기해 할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제를 이러한 맥락에서 다뤘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역사 교육 안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전쟁의 이야기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끝으로 유엔 총회 자리에서 전쟁에 대해 연설을 한다면 어떤 입장에서 어떤 내용으로 할지를 정한 뒤 글로 써 보고 발표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입장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그리고 유엔 총장 우리나라에서 또 나오면 좋겠네요)의 입장 등이 되어 발표를 했습니다. 

@ 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입니다.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참가자의 연설 중)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분이 우울해지기 위함이 아닌 한 단계 도약을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날씨 좋은 봄날 그것도 주말 오후, 참가자들은 2시간 동안 분위기를 엄숙했고 또 진지했습니다. 힘든 이야기였지만 참가자들도 한 단계 올라섰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가자들 모두 고생했고, 여러분들의 생각을 들으며 저 역시 많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달에 다른 주제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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