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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데이 ThinkingDAY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나를 달래줄 단 하루! 데카르트는 홀로 벽난로 앞에 앉아 생각했지만, 우리는 함께 서로를 마주 보고 생각합니다. 오늘 나와 당신에게 허락된 생각하는데이!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생각하는데이>는 한 달에 한 번, 하나의 인문학 주제를 가지고 청소년들이 모여 자기 생각을 말하고 공유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들이 한 달에 한 번, 하나의 인문학 주제를 가지고 함께 모여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입 한 번 뻥긋하기조차 힘든 지루한 모임이 아니라, 10명 내외의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주고받을 수 있는 모임이라면, 나아가, 많은 토론 프로그램들처럼 인위적으로 찬반을 가르고, 오로지 상대를 꺾기 위해서 경쟁하는 토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더 나은 생각을 위해서 자신의 고집을 꺾을 줄 아는 토론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요?

싱거운 답변이겠지만,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온 사실에 따르면, 누군가의 크고 작은 생각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쇠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진 못해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세상을 향한 생각들을 던지다 보면, ‘바람이 불어오리라’는 희망은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하는데이>는 이러한 희망에 작은 기대를 걸고, 청소년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진행되나요?
<생각하는데이>는 ‘송석복지재단songsuk.org’과 함께 합니다. 매월 하루를 지정하여 송석복지재단 혜화교육실에서 모임이 진행되고, 생각 주제와 초대장은 한 달 전, 톨레레게 홈페이지 및 송석복지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공지됩니다. 프로그램 진행 시간은 총 2시간이고, 톨레레게 연구원이 사회자로 참여합니다. 

프로그램 특징
상대방을 이기고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는 데에만 집중하는 경쟁적 토론이 아닌, 타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때로는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입장을 포기할 줄 아는 토론을 지향하는 토론 수업입니다. 수업은 90-120분간 진행되며 참여 인원은 5-10명 내외입니다.


주제들

우리는 작작 놀아야 할까?
우리는 심심하면 친구들과 영화를 보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등 ‘놀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어쩌다가 많이 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작 좀 놀아라.”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되뇝니다. 시간을 아껴 공부도 하고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동안 쓸 수 있는 시간이 2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면 필요한 것을 돈을 들여 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등 공부와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한편 19세기 무렵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과연 우리는 작작 놀아야 할까?” 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 함께 합리적인 경제적 이익 창출,이성적인 탐구를 통한 인류의 발전에 대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 사회의 현상에 대해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는 우리들에게 공부나 노동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 활동”이라며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진 우리 인간은 세상을 탐구하고 ‘공부’해서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켜왔고, ‘노동’을 통해 사회적 개인적 경제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다른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공부와 노동은 가장 ‘인간다운’ 활동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 활동을 통한 인류의 발전은 우리가 유익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요한 하위징아라는 학자는“우리가 작작 놀아야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누구보다도 공부를가장 열심히하는 ‘학자’가 말이죠.

“우리는 작작 놀아야 할까?”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것도 사랑일까?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아마 연애에 관심이 있으시겠죠? 지금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결혼’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과 관련된 문제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요. 일례로 얼마 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동성애 합헌 판결을 내렸는데 이를 둘러싸고 한국 각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인 것 같으면서도 사회 내에 통용되는 윤리나 가치관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슈로 다뤄집니다.

보통 ‘연애’라고 하면 살랑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과,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성이 데이트 하는 장면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는 결혼에도 그대로 이어져 살림하는 여성과 가장인 남성이 연을 맺어 자녀를 낳고 사는 것이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지요. 즉,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사랑을 여성․남성의 일대일적인 ‘낭만적 사랑’으로 규정하고,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절대불변의 가치로서 이것만이 올바른 형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낭만적 사랑이 특히 서양에서 근대나 되어서야 만들어진 발명품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낭만적 사랑만이 사랑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이죠.

일처일부의 낭만적 사랑 외에도,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와 중국 모수족의 일처다부제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어왔습니다. 동시대의 근대화를 거친 문화권의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낭만적 사랑 이외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어요. 소설이나 영화에 간혹 등장하는 ‘폴리아모리(polyamory)’는 세 명 이상의 사랑을 뜻하는데, 다시 말하자면 한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런데 서로의 사랑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 몰래 바람피우는 것과는 구분됩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형태의 사랑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특히 폴리아모리의 경우, 한국의 유교적 전통이나 서양 근대의 낭만적 사랑관과는 분명히 충돌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형태의 사랑도 사회 내에서 용인될 수 있는, 다시 말해 ‘올바른’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 유령의 방문은 악몽일까 선물일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맘때면 거리 곳곳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곤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다니지 않는 사람이든 크리스마스는 모두를 들뜨게 하는 마법 같은 날이죠.

하지만 여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들은 푸딩과 함께 푹푹 끓여 버려야 해!” 라고 윽박지르는 살벌한(!)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스크루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구두쇠 할아버지죠. 스크루지 할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는 온통 불만투성입니다. “버는 건 없는데 빚은 잔뜩 지고,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될 뿐 벌이는 나아지지도 않는”, “장부를 결산해 보면 일 년 열두 달 모든 항목이 적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일 뿐이죠.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 낯선 손님이 스크루지를 찾아옵니다. 이 손님은 놀랍게도 오래전 죽은 동업자 말리의 유령이었죠. 유령은 긴 꼬리와 같은 쇠사슬로 몸이 친친 감겨 있었습니다. 쇠사슬에는 돈궤와 열쇠, 회계장부, 증서, 지갑 등이 매달려 있었죠. 말리의 유령은 스크루지에게 경고합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3일에 걸쳐 유령 셋이 찾아올 것이라 예고합니다.

이 이야기는 1843년 런던에서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도입부 내용입니다. 1870년 6월 9일 디킨스가 죽자 한 어린 소녀가 “그럼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도 죽은 거냐”며 외친 일화가 있을 만큼 ‘크리스마스 할아버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죠.

이번 <생각하는데이>에서는 바로 이 크리스마스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펼쳐지는 유령의 방문이 여러분에겐 악몽이 될까요? 아니면 선물이 될까요?

유령이 찾아오는 <생각하는데이>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ZEZE를 제재할까?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 잎을 가져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수 아이유의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제제는 1968년 포르투갈어로 처음 발간된 J.M. 데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 등장하는 다섯 살 소년을 모티브로 한 인물입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나쁜 짓에 연루되고 학대를 당하면서 자라는 소년 제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아이유는 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소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제라는 캐릭터는 많은 모순점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제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참 섹시하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노랫말에서도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처럼 소년의 모순적인 특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하고 있는 ‘동녘’ 출판사는 이 발언과 노랫말이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동녘’ 출판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라는 제목으로 공식 성명을 내면서 “학대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섯 살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니까요. 를 둘러싼 논란은 이를 기점으로 음악계, 더 나아가 문화계 큰 화두로 자리하면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평론가가 이 논쟁에 참여했고, 아마도 이 초대장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한 번쯤 이 논란에 대해 한 두 마디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르죠.

이번 <생각하는데이>에서는 바로 이 를 둘러싼 논란을 다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된 뿌리 깊은 논쟁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왜 따옴표를 쓸까?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단단히 결심했어요.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 나오게 됐어요. 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칠십이 다 됐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아. 근데 나올 땐 조금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이젠 하고 싶은 말을 꼭 하고야 말거니까. 언제든지 하고야 말거니까. 내 팔을 끌고 이리 따라오라고 했던 그때 그 사람에게… “

1991년 8월 14일 한 여성은 카메라 앞에 섭니다. 그 여성은 일본군에게 ‘위안부’로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증언합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위안부’는 없었다던 주장을 뒤집는 피해자의 증언이 나온 것입니다. 처음으로 세상에 피해 사실을 알린 그녀의 이름은 김학순입니다. 이후 전국에 숨어있는 피해 여성들의 증언은 이어졌고,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여성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불끈 주먹을 쥔 소녀상이 공개됩니다.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20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날은 1,000번째 수요시위 날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소녀상을 할머님들께 선물합니다.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평화를 외치는 용기 있는 할머니들의 외침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일본군 ‘위안부’ 최종 합의문이 발표됩니다. 양국의 대표들이 공동 합의문을 발표합니다. 사과했으니 다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또한 소녀상도 철거하겠다고 합니다. 양국 정부는 만족스러운 합의라고 자축하지만, 정작 할머니들은 합의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시민들은 언제 철거될지 모를 소녀상을 오늘도 지키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뿐만 아니라 당신과 같은 전쟁 피해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외교적 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평화 문제인 것입니다. 이번 생각하는 데이를 맞아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부터 전쟁과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왜 일본군 ‘위안부’에는 따옴표를 쓸까요?

아이들이 된 아이돌?
“안녕하세요. 전 쯔위입니다.(중략) 중국은 오로지 한 국가 입니다. 양안(중국, 대만)은 단일한 국가입니다. 전 늘 저 자신을 중국인으로서 생각해 왔으며 이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중국인으로서 해외에서의 활동 시 실언을 한데 대하여 회사와 양안 간의 교류 및 감정에 큰 해를 끼친 점에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후 중국에서의 활동을 일체 중단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글은 몇 개월 전 JYP 소속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마이리틀텔레비전>(인터넷 사전 방송)에서 자신의 모국인 대만 국기를 보이면서 불거진 ‘대만 국기 논란’에 대한 그녀의 사과문(번역문)과 소속사인 JYP의 사과문의 일부입니다.

우선 ‘대만 국기 논란’의 배경부터 간단하게 짚어 볼까요? 이 논란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 여론과 대만의 독립을 반대하는 중국 여론 간의 깊은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쯔위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들어 보인 행동이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중국 네티즌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녀의 소속사인 JYP는 중국 측과 계획 중이던 여러 사업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편, 우리를 포함하여 대만과 여러 해외 언론이 비판했던 문제 중 하나는 ‘대만 국기 논란’ 자체 보다는 바로 이 논란에 대한 기획사의 대응입니다. 기획사가 중국 대중들에게 발표한 사과문과 영상에는 대만이 모국인 쯔위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지칭하면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담겨있으며, 이는 보는 사람들에게 대형 연예 기획사가 일방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나아가 아이돌 가수의 어린 나이와 미성숙함을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역시 비슷한 인상을 받았거나, 관련 뉴스 혹은 잠깐씩이나마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비판적인 견해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예상해봅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굳이 이렇게 밖에 해결할 수 없었는지’, ‘아이돌 가수의 현실이 실제로는 어떨지’ 등등 다양한 대화들이 오고가기도 했지요.

논란이 불거졌던 그 때로부터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번 만남에서는 이 이슈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어렴풋하게나마 가졌던 우리의 생각이나 질문들은 물리적 시간과 상관없이 개인이나 사회에 여전히 자리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쯔위 사태’에 대해 평소에 조금이나마 들었던 생각이나 인상이 있다면 이것을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이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요?”
“만약 누군가에 의해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번 <생각하는데이>에서는 ‘용서’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편인가요? 아니면 잘 용서해주지 못하는 편인가요? 우리는 흔히 ‘용서하라’라는 말을 많이 듣곤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잘 해주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넓고 인자한 사람으로 보이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속이 좁은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하죠.

한편 ‘용서하라’라는 말이 마치 훌륭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말로 인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쉽게 용서를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특히나 앞선 사례처럼 누군가에 의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 가해자를 온전하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왜 용서를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혹시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에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시간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하여 ‘용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보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청준 선생님께서 1985년에 발표한 단편 <벌레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벌레 이야기>는 2007년 영화 <밀양>으로도 개봉된 바 있죠. 소설을 미리 읽어 오거나 영화를 먼저 보고 와도 좋습니다. 물론 아무 준비 없이 와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여러분의 생각이 정리되고 또 바뀌기도 하고 그럴 테니까요. 여러분의 모든 자유로운 생각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숨죽여 흐느끼며 /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지난 4월 13일 우리나라에서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만 19세 이상이 되면, 재산, 학력, 성별, 종교 등과 상관없이 1인 1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대표를 직접 선출하거나 혹은 내가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습니다. 몇몇의 사람들이 체육관에서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선거에 나가려 정당을 만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법이 금지하고 국가가 금지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단어를 입에 올리면 경찰의 조사를 받거나, 남산 밑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숨죽여서 남몰래 써왔습니다. 법이 그랬습니다. 1987년 그날 전까지는 말입니다.

1987년 그날. 우리는 자신의 대표를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번 <생각하는 데이>에서는 1987년 그날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선거와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1980년대 한국 역사에 대해서 간단한 조사를 해오면 좋습니다. 선거의 4대 원칙만 알고와도 좋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날 나눠봅시다.

법대로 해?!
운전 중 시비가 붙어 다투게 된 어른들을 본 적 있나요? 요즘은 보복 운전이라고 해서 매우 공격적으로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 장면이 자주 보도되지만, 사실 삿대질 몇 번과 고성 몇 마디 지르고 등을 돌려 자리를 뜨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일을 크게 벌이려 하지 않는 거죠. 상황이 더 심각해져서 ‘단판’을 지어야 할 때도 될 수 있으면 서로에게 손을 대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목소리가 커지고, 서로를 향한 삿대질이 빨라질 뿐이죠. 하지만 이쯤 되면 꼭 서로를 향해 힘을 주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이 무서워서 서로에게 손을 대지 못했던 건데 이제는 이 말을 무기로 상대를 위협하는 거죠. 바로 “법대로 해?!”라는 말입니다.

도대체 ‘법’이 뭐길래 어른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마다 법을 찾는 걸까요? 정말 ‘법대로’ 하면, 곤란한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흔히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회’를 야만적인 사회라며 비난합니다. 그렇다면, ‘법이 가장 앞서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일까요? 만약 어느 날 치안상의 이유로 모든 개인에게 일인용 감시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법이 제정된다면, 이때도 여러분은 법대로(!) 할 건가요?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고, 악법도 어쨌든 법이기 때문에?!

이번 <생각하는데이>에서는 ‘법’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법대로 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마음 속 진짜 영웅
“유치원 때 이미 다 배워 알지만, 점점 잊고 지냈던 우리 마음 속 진짜 영웅을 만나고 싶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기획의도 중)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서 20여개 국가로 수출될 정도로 인기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그 인기만큼이나 논란도 많았습니다.

베트남의 한 기자는 <태양의 후예>에서 한국군이 미화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이나 중국의 방송에서 일본군을 찬양하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 “언젠가 베트남 방송에 한국군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드라마가 방영된다면 ‘오욕!’이라는 글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것이다.” 라는 글을 올렸지요. 이러한 글을 시작으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며 한국군 미화는 그 안에 없다’는 등의 반대 견해와 함께 베트남 방영 논란을 둘러싼 많은 논쟁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군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드라마 속 주인공 ‘유시진’은 마음 속 진짜 영웅이 아니었나 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군에 대한 어떤 역사와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요? 1964년부터 우리 나라는 베트남전에 의료진을 포함한 한국군을 파병하였고, 전쟁 도중 우리군은 약 9,000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당시 민간인에 대한 한국군의 폭력은 참전 군인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잔인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인들은 <태양의 후예>란 드라마를 단순히 드라마로서만 즐길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먼저 떠오를 테니 말입니다.

이번 <생각하는데이>에서는 이 이슈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그 안에 숨겨진 중요한 주제 하나를 다루어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 이번 이슈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관련 글을 읽고 오셔도 좋겠네요.

두 개의 식탁
여러분 앞에 두 개의 식탁이 차려져 있습니다. 한 식탁은 열 명이 와서 먹어도 될 정도의 고기, 샐러드, 과일, 디저트까지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족한 아주 멋들어진 식탁이고, 다른 한 식탁은 다양한 음식은커녕 한 명이 먹기에도 아주 부족해 보이는 음식이 차려져 있는 식탁입니다. 이 두 식탁 중 반드시 하나의 식탁을 골라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식탁을 선택하고 싶나요? 아마 고민의 여지없이 먹을거리가 풍족한 첫 번째 식탁을 선택하겠죠?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두 번째 식탁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많은 매체들을 통해서 지구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린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을 거예요. 지구의 한쪽에서는 음식물이 버려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빵 한 조각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도대체 이 지구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생각하는데이>에서는 굶주림의 문제를 살펴보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당신은 메갈리아인가요?
“당신은 메갈리아입니까?”
사회적 약자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다.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 중)

저자가 말하는 “부당한” 질문이란 “너 빨갱이지?”, “폭력적이지?”, “게으르지?'”, “더럽지?” 등 우리의 일방적 기준이나 편견을 전제로 한 것을 일컽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던질 수 있는 이들은 이미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답정너’와 같은 것이지요. 최근 온라인상에는 여성과 관련한 기사나 의견엔 여과 없이 ‘메갈리아’라는 꼬리표가 따라옵니다. 진보적 매체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메갈리아 대한 생각을 밝히라’며 의견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신은 메갈리아가 아니라며 선언이나 인증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사회적 집단 안에서 질문하는 존재일까요? 질문받는 존재일까요? 우리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단순하게 둘 중 어느 하나의 경우에만 속할 수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사회적 약자가 될 수도 있고 강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번 <생각하는 데이>에는 메갈리아 논쟁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밝히라’는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 것입니다. 메갈리아는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로 날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고 혹은 할 말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봅시다.

내일을 위한 시간
<내일을 위한 시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는 몇 마디의 구호를 짐승의 소리처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조영래 <전태일 평전> 중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많은 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다리에는 저마다 이름과 사연이 있는데, 유일하게 사람 이름의 별칭이 있는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청계6가 평화시장 앞의 ‘전태일다리’가 그것입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합니다. 그는 죽어가는 동안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습니다. 일 요일에 쉬고, 하루에 8시간만 일하고, 점심시간에 천천히 식사할 수 있고, 열악한 환경에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노 동자들의 건강을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법을 만들어 달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전태일다리는 그런 그를 기억하는 다리입니다.

2015년 11월 14일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 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법 제정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날 거리에는 대통령 공약이었던 쌀값 20만 원 을 준수를 외치던 농민들도 있었습니다. 그 농민들 중 한 사람은 경찰이 쏜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아 그 자리에서 쓰 려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리고 1년 후 2016년 9월 25일 병원에서 죽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백남기입니다.

전태일도 백남기도 그리고 그날 거리에 모였던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번 <생각하는 데이>에서는 미래의 노동자로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런 노동자에게 내일을 위한 시간이 있는가를 물을 것입니다. 미리 “노동법”에 대해 알아보거나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고 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황금수저론과 행복
최근 새롭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단어를 아마 여러분도 자주 듣고 또 말했을 것 같네요. 이 중 사람들의 눈에 가장 좋아 보이고 부러워하는 것은 ‘금수저’일 것입니다. 자기가 금수저는 아니지만 여유 있는 삶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건물주’를 희망하기도 합니다. 아직 대학교도 가야하고, 취업도 해야하는 등 생활을 위해 채워야할 조건들이 많이 남은 여러분들 중에도 건물주가 장래희망인 사람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이렇게 한 번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만약 내가 금수저라면, 과연 여러분은 지금보다 얼마만큼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또 모든 금수저들이, 그리고 모든 건물주가 행복할까요? 도대체 행복이 무엇일까요? 세상을 살다보면 알 것 같긴 한데 막상 그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난감한 것들이 있습니다. ‘행복’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군요. ‘직장을 가지거나, 가족과 행복하게 살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평소 좋아하던 취미생활을 하거나…’ 행복에 대한 개인들의 가치관과 방법이 다양하게 나열되곤 하지만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뚜렷하게, 그리고 스스로 설명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 초대장을 받은 여러분은 충분히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마음과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자, 이번 모임에서 우리 한번 생각해볼까요?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행복은 무엇인가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여러분은 주로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나요? 아니면 최근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있나요?

스마트폰의 발달로 24시간 사람들과 연결되어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고독함을 느낄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고독은 매일 밤이면 으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짬을 내서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된 셈이죠.

이번 <생각하는데이>의 주제는 ‘고독’입니다. 고독과 비슷한 말로 외로움, 쓸쓸함이라는 단어들이 있네요. 자, 어떤가요. 여러분은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나요? 그렇다면 언제인가요? 왜 그렇죠? 또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혹시 외로움의 감정을 두려워하진 않나요? 혼자 있음이 너무 두려워 그런 시간을 줄이려 더 친구를 찾거나, 밖으로 나가거나, SNS에 의존하거나요~ 그렇게 해결이 되면 참 좋을 텐데 그런데도 이 쓸쓸한 감정이 잘 해소되지 않는 것 같을 때가 많죠. 왜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잖아요.

이 감정 도대체 뭔가요? 갑자기 불쑥 찾아오는 이 쓸쓸함. 우리는 이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요?

미래를 바꾸는 착한소비
‘착한’ 콜라, ‘착한’ 초콜릿, ‘착한’ 커피.. ‘착한’ 소비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면 ‘착한 커피’라는 용어를 많이 들어봤을 것 같네요. 우리는 보통 커피 한잔을 사면 보통 2천원에서 5천원까지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가격으로 구매합니다. 우리가 이 가격으로 커피를 구매하면 커피 농부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얼마일까요? 놀랍게도 커피 가격의 5%도 되지 않는 금액을 받는다고 합니다. 천 원당 약 50원을 받는 거지요. 특히 불공정한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그 곳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학업을 포기하고 농장 또는 공장에서 노동을 합니다. 여러분들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말이죠.

이런 난감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공정무역, 착한소비입니다. 비싸더라도 커피를 생산한 에티오피아 커피농부들에게 제 값을 직접 지불하고 구입하여 공정한 거래 구조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선의대로 윤리적인 거래를 위해 실천되고 있는 공정한 거래인데 누군가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 ‘소비를 함으로써’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지, 나아가 선의로 시작한 일이 도리어 무익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죠. 심지어 조금 더 냉정하게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생각하는데이>에서는 공정무역, 착한소비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해보고 이를 둘러싼 많은 논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수많은 입장 중 여러분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생각해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 날이 오면 II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Rome was not in a day)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린아이가 걷기까지 목을 가눌 수 있어야 하고, 혼자서 기고 움직이다가 무언가에 기대어 설 수 있는 근육이 생긴 후 비로소 걸을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떼기 위해선 또 무수한 넘어짐의 시련을 겪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어린아이는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과의 많은 시간을 쌓는다는 것은 마냥 좋은 추억을 쌓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투와 몸짓을 익히며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의 행위나 관계를 할 수 있게 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많고 또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과정이 이러한데, 로마 제국과 같은 거대한 역사는 훨씬 더 많은 준비와 시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시간과 노력은 한 개 인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이가 걸음을 떼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 어른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건이 쌓여 역사를 만들었고, 그 시간에는 기록된 영웅뿐만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번 ‘생각하는데이’에서는 역사가 어떻게 평범한 우리들의 선택과 우연한 경험들로 구성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특별히 올해로 30주년이 된 6월 항쟁의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헌법 67조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헌법에 이 한 구절을 넣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역사를 썼을까요? 1987년 나왔을 많은 시민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들의 시간이 모여 우리는 비로소 직접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던 던 ‘그 날’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지금 나의 시간이 어떤 역사가 될 수 있을지를 미리 생각해 온다면 우리에게 ‘생각하는데이’가 있는 ‘그 날’ 역시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시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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